珍的目光
사실 내게 맥주라는 것은, 본문
그저 친목도모를 위해 마시게 되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는 마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11년 땡! 하고 스물이 된 후에, 집에 아무도 없는 날에 집 앞 슈퍼에서 카프리 한 병을 사 와서 마시곤 했던 것은 '맥주의 맛'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때 느끼고자 했던 맥주의 맛은, 이건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정말 니 맛 내 맛도 없었다. 탄산가스마저 기분 나쁘게 만들던 맛.
어젯밤에 홍차 상자를 들여다보다 티백 수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아서 왜 그런가 하다가 한 달 전에 이미 마셔버린 것을 기억해냈다. 전 직장 동료의 집에서 홈 파티를 즐겼고, 그때 맥주에 담가 먹었더랬다.
문득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마시리라, 했고 귀갓길에 싼 걸로 캔맥주를 하나 사 왔다.
오늘은 레이디 그레이를 맥주에 마셨다. 오렌지 향 같은, 레이디 그레이 특유의 그 향을 기대했는데 웬걸, 얼 그레이와 크게 다른 감이 들지 않아서 의아했고 또 실망했다. 그저 베르가못 향이 알싸한 맥주, 그뿐이었다.
오늘 마신 맥주는 하이트의 드라이피니쉬. 어차피 티백을 넣으면 맥주 고유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냥 싼 맥주 아무거나 해서 마시라고, 얼 그레이 티백을 넣어 마시는 방법을 알려준 이가 그랬다. 내가 갔던 편의점에서 제일 싸서 사 온 것도 맞지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굉장히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괜히 기대하며 산 것도 맞다. 3학년 땐가 박물관 회식 때 마셨던 게 굉장히 맛있었다. 그저 분위기를 타서 그런 것 같다는 건 지금에서야 하는 생각이고. 여하간 그 날 이후로 맥주 마실 일이 생기면 집어들곤 했는데 맛있게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그저 기분 탓이었겠다.
그리고 이건 고백 같은 건데 크로낭부르 혹은 크로넨버그 사의 1664 블랑BLANC을 제외한, 다른 모든 맥주는 다 같은 맛이었다. 기름진 보리차 냄새와 알코올 냄새와 탄산 가스의 조화를, 나는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아 지금은 기억이 드문드문한 밀맥주랑 라오스에서 마셨던 쌀맥주도 빼고. 그리고 나는 내 혀가 이다지도 멍청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한테도 이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