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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的目光
1. 옛날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인형뽑기가 유행이라는데 왜 길거리에 뽑기 박스가 없지 했더니 점포에 기계를 잔뜩 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뽑기 박스가 야기한 사각지대 같은 소리를 하고 싶었는데 잘 모르겠다. 어쨌든 흑백이 좀더 정돈된 느낌이다. 2. Please choose a correct word. 영어 배워야겠다. 3. 건물 안팎 상황이 섞이는 것을 좋아한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카페의 공간이 커져만 간다는 식의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잘 모르겠다. 보호자의 관심 밖으로 피보호자가 밀려났(다고 생각했)고 마침 승용차가 지나갔다. 피보호자는 별개의 상황에 흡수되어, 보호자와 유리되었다. 차 문을 열고 있는 아이와 건물 안에서 인형을 뽑는 어른을 찍은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아.
못(Mot)의 '지난 일요일을 위한 발라드'를 듣고 있었거나 또는 듣는 중이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블로그에 익숙하지 않으니 제목을 붙이는 것부터 일이고 '무제'로 두기는 싫고 "00시 00분에 저장된 글입니다." 같은 것도 좋지는 않아서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게 노래 제목이고 지난 일요일이 아니라 오늘, 이번 주 일요일이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주어와 술어가 두 번 이상 나오는 문장을 지양하려 하지만 또 이런 꼴이 된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참 힘들다. 늦잠을 잤다. 남들이 보기엔 점심일 것이 분명한, 아침을 먹었다. 이를테면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by 가을방학)의 상황이다. 자고 일어나서 처음 먹는 게 아침이기 때문에 나는 거리낄 게 없지만 나 말고..
피콜로라떼다. 오랜만에 왔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들르고 롱블랙을 주문해서 마시고, "오다가다 들르겠거니" 해 놓고 한 번을 더 왔다. 그 때는 플랫화이트를 차게 마셨고, 물론 맛있었다. 지난 5월에 이태원에서 갔던 챔프커피에서는 젓지 말고 마시라 했던 것 같았는데 여기서는 저어 마시라고 했다. 스푼을 같이 주셔서 크레마를 떠 먹고는 저어 마셨다. 우유 냄새가 싫어서 우유 안 좋아하는데 커피와 섞일 때의 향이 고소해서 좋았다.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모카라떼'를 주문할 생각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피콜로 라떼'에는 코코아 파우더로 한 층을 이루는, 모카라떼로 추정되는 아이스 음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품이 풍성했다. 또 언젠가 마..
한 박스 생긴 것을, 지난 주말에 알았다. 어디서 얻었다고 했나 아닌가 샀다고 했나 어떤 연유로 이게 우리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하간에 탄산수가 한 박스 씩이나 생겼다. 언제는 돈 아깝게 물을, 유해한 탄산가스가 입혀진 물을 돈 주고 사 먹냐. 돈이 그렇게 많느냐 따위로 을러댔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저 제가 즐기면 취향이고 남이 하면 낭비고 사치고 그런 것이지 싶다. 네 자로 축약한다면 '내로남불'이라고 이미 말도 생겼잖은가, 사자성어 축에 끼어도 될 법한 조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트레비 삼백오십오 미리는 처음 본다. 씨그램과 트레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돈이 넉넉할 때는 씨그램을 사 먹고 조금 아쉬울 때는 트레비를 사 먹곤 했다. 트레비는 오백 미리 병에 ..
퇴사한 지 세 달이 훌쩍 흘렀다. 그리고 백수로서 4개월 차를 살게 되겠다.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면 취준생, 아무것도 안 하면 백수라고 했다. 그러니 나는 백수다. 인정을 하고 나니 한결 편해지냐면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나를 '백수'라고 규정하고 났더니 그럼 그 전의 나는 뭐였나 싶은 생각도 드는 등 이래저래 심란하다. 퇴사 전의 내게 뭔가 고유의 아이덴티티라도 있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거든. 알다가도 모르겠다. 알모경은 귀엽기라도 하지, 나는 그저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월초다. 9월 중순부터 쓴 교통비는 다음 주 월요일에나 출금되겠다. 교통비 출금 전에는 이렇다할 소비를 못 할 것 같다. 퇴직금..
직장인 같은 카페라고 생각했다. 하긴, 바리스타에게는 카페가 직장이고 바리스타도 직장인이긴 하다만. 직장인 같은 카페가 아니고, 공지된 카페의 영업 시간은 호주에 있는 여타 카페의 영업 시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호주식 커피를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영업도 호주식으로 한다니, 신선했다.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개념이되 다른, 롱 블랙을 홀짝 비워냈다. 오래 머물기는 '조금 그런' 느낌이지만 도서관 가기 전에 종종 들르겠거니 싶다.
이라고 썼지만 점심이라기에는 좀 민망한 시간이다. 확실히 규칙적으로 살지 않으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한다. 플레이팅을 예쁘게 하고 싶었으나 오늘도 나는, 펼쳐두고 사진 하나를 찍고 후딱 먹어치웠다.
레이디 그레이를 마셨다. 내 기억은, 직장인의 생활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지난 닷새에 마셨던 것에 머물러 있지만 그 후에도 한두 번은 더 우려 마셨을 것이다. 그 때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역시, 누군가에게 티백을 건네었기 때문이겠다. 컵에 뜨거운 물을 먼저 받고, 티백을 담근 다음에 내가 원하는 수색이 보이면 티백을 건져 다른 그릇으로 옮겼다. 그걸 화장대 위에 올려뒀는데 화장대가 하얘서, 티꽁이 정갈하게 예뻐 보였다. 그리고 문득, '정도를 아는 삶' 따위의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 나는 '정도'가 정해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 직장이 내게, 티백 우리는 만큼의 시간을 안 준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티백 속의 찻잎이 불어터지..
이라기엔 아직 이틀이 남았지만 어쨌거나, 다이어리 뭐 사지를 고민하다 룰드 노트를 샀다. 그리고 디-데이 플랜 스티커를 붙이고 먼스 플래너마냥 쓰고 있다. 그래도 일단 디-데이 플랜의 꼴을 하고 있으니 목표랍시고 "조금 더, 쓸모있어지자!"라는, 시답잖은 문구를 써 넣었다. 그래도 나는 3개월쯤 지나고 나면 내가 좀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현실은 자존감 하락한 밥버러지 하나가 손가락이나 놀리고 있는 것 뿐이지만 말이다.
보다 더 자주, 미로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생각만 할 때는 아 왠지 그런 느낌이다 그뿐이었는데 글로 쓰고 보니 띄어쓰기 굉장히 헷갈린다. 들어와있는 / 들어와 있는 / 들어 와 있는 / 들어 와있는 으로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았다. 음. 는 지하도에 들어올 때마다 하는 생각이고 내가 지하도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다. 1999년 5월, 이사를 하고 전학을 왔고 그리고, 집에 가는 길을 몰라 절절매다가 어떤 언니들이 집에 데려다줬다. 집에 가야겠단 생각에 그 언니들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나쁜사람들'이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곧잘 따라나섰고 공원을 지나 창원대로를 조금 걷고 지하도에 들어섰다. 윈도우98 화면보호기 중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