珍的目光
졸업, 이후 근황 본문
우선은 잘 지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누구보다 잘 지낸다는 말은 매우 과장된 말이겠지만 어쨌거나 제법 안정된 수입도 있고. 이대로 안주해도 뭐, 나 하나 건사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는 내가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드는 안일한 생각에 불과하겠다.
2015년 5월. 학생이 아닌 나에게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직장인'이라 소개하기는 조금 민망하다. 제법 안정된 수입도 있는 주제에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졸업을 했다. 대학교 졸업을 했다. 옛날에는 대학교 졸업 다음에 내가 학생으로서 좀더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예를 들면 대학원 진학을 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친척 어른들도 다 그렇게 믿었다. 너는 취업할 생각보다는 대학원 가서 논문이나 하나 멋들어지게 쓰고 석박사 학위 따라는 말을 그간 많이도 들었다. 내가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내 스스로 그 길의 불안정함을 깨닫고 그만두기를 원했을 때도 친척 어른들은 그런 소리를 했다. 그리고 끝에는 꼭 "느그 아빠 돈 잘 벌잖아."가 붙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게 싫다고 엄마한테 웅얼대듯 말했지만 엄마는 그게 뭐 어떠냐고 되묻기만 했다.
졸업을 했다. 대학원생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마음에 없는 짓이었다. 대학원생을 학생이라 할 수 있느냐면 그것도 좀 애매하지만 어쨌든 간에 나는 더 이상 학생일 일이 없게 된 것이었다. 평생 학생으로만 살다가 학생이 아닌 삶을 살자니 무서웠다. 그 무서운 마음에 2월 중에 이력서를 많이도 넣었더랬다. 이제는 '친구'라고 부르기도 뭣할 만큼 내 마음 속에서 떼어진 인맥들이 하나둘 취업 소식을 들려줬다. 어쩌다 넣은 지원서에 오케이 사인이 내려져 출근을 하게 되었다고 했고 이력서를 넣는 족족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마음 속에서 경시해왔던 사람들이라 머릿속에는 빨간 불이 켜지고 그 빨간 불이 깜박이기까지 했다. 그러고보니 그들은 학과 공부를 하면서 그것과 병행하든 연계하든 학사 학위 말고도 해둔 것이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알량한 문학사 학위 뿐이었다. 불안해 죽을 것 같아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처넣었다. 그리고 졸업식 당일에 전화를 받았다. 언제 넣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나를 청해 주신 데 감사했지만 학사모는 써 봐야 했기에 다음 날으로 면접을 미루었다. 나도 뭐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졸업 다음 날, 면접을 보러 갔다. 부산도시철도 서면역 8번 출구에서 백 미터 이내에 있는 건물의 2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에 불안했던 것은 다음지도 앱에 내가 면접 보러 갈 회사의 이름을 검색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길치인 나는 3분 가량 지각한 꼴이 되었고 이것이 면접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나만 늦었다. 다른 면접자가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먼저 도착해서 회사 홍보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 망했다.'
면접은 별 것 없었다. 이력서에 의거한 질문을 듣고 응답했다. 거기에 사소한 잡담이 몇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회사는 부산이었고 나만 창원 사는 사람이라 그런가 내게 주거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도 했다. 자기가 창원 살았을 때의 이야기도 하고. 아, 이때 '오오 지연(
地緣)! 지연인가!' 싶기도 했다. 스크립트를 주면서 읽어 보라고 했다. 내 입은 살가운 말을 뱉었다.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살가운 목소리로 다소 경박스럽게 멘트를 뱉어냈다. 그리고 면접은 끝났다. 내가 제일 늦게 끝났는데 내 면접이 끝나고 내게 좀더 기대한다는 투로 말하기는 했다. 에이 설마 싶다가도 아냐 지금 이 사람은 내가 마음에 드는 거야 싶기도 했다.
다른 면접이 하나 더 있기는 했지만 굳이 적지는 않겠다. 교대역 근처 롯데카드 콜센터였는데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컨설팅 회사의 중개로 본 면접이었는데 컨설팅 회사로부터 면접비 만 원을 받은 것 말고는 뭐, 아, 신입 뽑는다는 공고에 경력자들이 많이도 왔던 게 조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나. 컨설팅 회사로부터 받은 이력서 컨펌이랑 면접 보기 전까지 온 지속적인 연락도 기억은 난다. 근데 뭐 별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다. 간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서 기분이 업되었다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당장 돈이 급하거나 한 게 아니라 절박한 마음도 없었고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었기 때문인 게 제일 큰 이유.
면접에 붙으면 몇 시에 연락을 주겠다고 한 시간이 되었다. 학교 밑 이디야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먼저 번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꼭 출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랑 상의해보고 연락드리겠다 했다. 단골이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자주 들르려고 노력하는 술집에 가는 길에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쉽게도 면접에 붙지 못했다고 했다. 에이 뭐 그렇구나, 그뿐이었다. 다른 면접에 응시하겠느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다고만 말하고 이후 모든 연락을 씹었다.
면접 다음 날, 출근했다. 여전히 다음지도 앱에 위치가 검색되지 않는 것이 불안했다. 건물에 간판이 없는 것도, 사무실에 있는 책상과 기타 비품들이 모두 새 것인 것도 불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서 하루를 보냈다. 창원에서 부산, 또 부산에서 창원까지 왔다갔다 하는 게 분명 일상이었는데도 힘들었다. 차차 몸에 익겠지 싶었다.
2월에 출근을 3번 했다. 그리고 3월에 출근을 2번 했다. 그리고 무단퇴사자가 되었다. 업무에 대한 회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사람들이 금방 들어오고 금방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에이 사람들이 왜 그럴까 싶었는데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었다. 체계도 없는 주제에 체계적인 척 과시하는 것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한 달은 꼬박 채우는 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의겠거니 해서 버티려고 했다. 그러다가 출근 닷새째, 여기는 진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력서를 두 번 넣었는데 소식이 없다가 다시 한 번 넣은 데서 연락이 왔다. 혹시나 연락이 올까 싶어 인사담당자 연락처를 폰에 저장해두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이력이 눈에 들어온다며, 내일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했다. 감격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기퇴근을 했다. 다음날은 결근을 했다. 그만둔다고 빨리 말한다는 것을 하루 미루고 그 다음 날에 일신의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다는 문자를 보내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새 회사가 될 곳에 면접을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의학과 조교 자리가 비었는데 혹시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학과 조교가 그저 교수 시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떨떠름했지만 전화를 주신 교수님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면접을 보러 갈 데가 있어서요- 하고 거절 아닌 거절을 했다.
면접에서 있는 힘껏 나를 어필하려 노력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았고 어린이들을 많이 접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너스레를 떨까 하다가 동생도 둘 있고 사촌동생과는 나이 터울이 심하며 곧 조카가 태어날 예정이라 아이들에게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이내 면접관들이 으레 할 법한 질문이 들어왔다. 조직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부당한 것은 윗선에 찔러줘야 할 것 같았지만 그리 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저는 약간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로 입을 열었다. 저는 좀 소심하기 때문에 그다지 큰 사안이 아닌 이상은 제 속에 묵혀두겠다고 말했다. 조금 더 사소한 질문이 들어왔다. 현재 거주지와 출퇴근 방법, 체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기초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정도였다. 무난무난하게 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관장과 대면했다. 내 이력서를 읽고 든 생각은 그래, 그랬을 것이다. 학예 및 연구직 경력만 있는 애가 전시운영직에 지원해서 능동적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걱정 비스무리한 뉘앙스의 질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남에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고 제가 아는 것을 남에게 아르켜 주는 것은 정말 뿌듯한 것이라 말했다. 나름 성공적인 면접이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지금 생각하면 나만 완전 절박했던 면접이었지만.
……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하고 있다. 월요일만 쉬는 것마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 뭐, 별로 할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리고 남들 일할 때 노는 건 짜릿할 테니까! 다만 월요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데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다 문 안 열어... 8ㅁ8
졸업을 했다. 이제서야 생각나는 건 아, 나 그거 그 사진 찍어보고 싶었는데. 여럿이 모여서 가운 입고 학사모를 머리 위로 힘껏 집어던지는, 졸업식의 클리셰 같은 그 사진.
졸업을 했다. 동의대 나왔다는 말을 하는 데 주저없지는 않지만 좀더 망설이는 시간이 줄었다. 가볍게 툭툭 내던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